
갑자기 진지하면서도 잘 만든 좋은영화가 보고싶었다.
어떤 계기였는지 기억은 안나도 몇년전에 봤던 이 영화를 생각했고
두번이나 다시봤다.
불꺼진 조용한 거실에서 티비만 켜놓고
소파에서 담요를 덮고누워서
조용히 경청하듯 정독하듯이 진지하게 이 잘만든 영화를 즐겼다.
명작은 언제봐도 그 감동은 그대로 아니 배가된다.

실화를 바탕으로한 이 영화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시작한다.
2차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의 횡포와 억압속에서
유대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생존기를 그의 회고록을 통해 그린 영화이다.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은 유대인들을 잔혹한 방법으로 억압 통제하고 말살하기 시작했다.
벽을세워 독일인과 폴란드인의 거주공간을 나누었고 같은 공간에 있을수도없었으며
팔에는 유대인을 상징하는 파란색 별이 그려진 완장을 차게했다.
재산과 쓸만한 물건들은 모두 몰수해갔고 병들고 약한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죽였다.
이 영화에서 독일군이 한 유대인가족의 집을 찾아간다.
모두 일어서라는 명령에 휠체어를 타고있는 노인이 일어서지 못하자
훨체어를 그대로 들어서 베란다밖으로 떨어뜨려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라서 과장되게 연출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않았다.
그시대의 나치였다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만한 악마같은 짓이었다.
그들은 러시아 연합군이 독일군을 몰아내기까지 노예같은 삶을 살거나 죽어야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개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했던 비참한 시절이었다.
어디에서 익숙하게 봤던 모습이다.
같은 시대에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속에서 유대인과 같은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있었기에
보는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인간의 잔악함은 어디까지 일까.
일본군이 더 잔혹할까 독일군이 더 잔혹할까 아님 영국?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는사이에 사람 죽이는것이 모기,파리 죽이는것처럼 아무것도 아닌일이되는걸까.
그들에게 애초에 최책감이란건 있었을까.
세뇌된걸까. 후천적인 영향이 아니면 그들은 태어날때부터 악마인가...





어떻게 한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기구할수 있을까.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이다.
가끔씩 할머니 할아버지나 주위 어르신들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놀랄때가 있다.
내 인생은 그분들의 인생에 비하면 지루하다 싶을정도로 평탄하고 평온한 인생처럼 느껴진다.
남들은 한번겪기도 힘든 온갖고난과 풍파들을 겪으신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산증인이자 역사 그 자체인분들이다.
주인공인 스필만도 그분들의 삶과 너무나 닮아있다.
나치의 끔찍한 만행이 자행되던 그때 그 역사한가운데 살았던 스필만의 인생은
잔혹했던 일제강점기를 지나오신 우리 어르신들의 모습과 다를바없었다.
저명한 음악가에서
죽음의 문턱앞에서 나치의 핍박아래 목숨을 겨우 연명하며 노예같은 삶을 살아야했던 주인공.
매일같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살생을 목격해야했고
날아오는 총알과 포탄을 피해 사력을다해 도망다녀야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이하의 대접을 견뎌내야했으며
지독한 추위와 배고픔도 견뎌야했다.
한사람의 인생에서 이 모든들이 일어나기에는 너무나 가혹하다.
다행이도 전쟁이 끝난후 스필만은 다시 음악가의 삶으로 돌아갈수 있게되었다.
숨어지내던 그를 발견한 독일장교가 그를 죽이지않고 도와주었기에.


독일장교에게 몰래 숨어지내고 있는것을들킨 스필만.
독일장교는 그에게 직업을 물었고 그는 머뭇거리며 피아니스트라고 말한다.
그리곤 장교는 피아노가있는 공간으로 그를 데려가 연주를 하게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명 깊게봤던 장면 중 하나였다.
한동안 피아노를 칠수없었기에 손은 굳었을테고 추위까지..
하지만 이내 감을 찾은 스필만은 그동안 억눌렸던 서러움을 토해내듯이 미친듯이 피아노를 연주한다.
피아니스트의 손이라고 믿겨지지않을정도로 남루하고 더러운 손으로 너무나 아름다우면서 슬픈음악을 연주한다.


그의 감동적인 연주가 독일장군의 마음에도 닿았던것일까.
전쟁통속에서 듣는 아름다운 피아노연주는 수많은 생각을하게했고
잠시나마 두사람을 하나로 묶어주기에도 충분했다.
또한 남루한 차림과 어울리지않게 훌륭한 연주를하고있는 스필만을 보고있자니 안쓰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날이후로 독일장교는 스필만을 찾아와 식량과 입고있던 군인코트까지 내어주면서 그를 도와준다.
그리고 머지않아 러시아군이 올것이라며 조금만 더 견디라는 이야기도 해준다.

그시대에 누군가는 독일인으로 태어났기에, 또 누군가는 폴란드인으로 태어났기에
숙명적으로 받아들어야 하는것도 있었을것이다.
군인이되었는데 마침 전쟁이 발발했고 독일군인으로서 나라를위해 해야할일을 해야했을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할지라도...
하지만 아무도 보지않는 공간에서 폴란드인과 단둘이 마주쳤다면 출신과 정치적사상이 뭐 그리 중요할까.
물론 그상황에서 파리,모기 죽이듯이 죽이고 바로 떠났을수도 있었겠지만
그 독일장교는 스필만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것이다.
무기하나없이 추위와 배고픔에 굶주려있는 폴란드인을 굳이 죽여야할 필요는 없었을테니.
다만 운이 안좋아서 이 순간에 나는 독일군인이고 상대방은 폴란드인으로 만났을뿐..
전쟁이 아니었으면 그 두나라는 서로에게 총을 겨누지 않았을테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지도 않았을것이다.

독일장교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않아 러시아군은 독일을 점령하고
상황은 역전되어 독일군은 포로로 잡혀간다. 폴란드인들이 그러했듯이..
스필만을 도와주었던 그 독일장교도 그곳에 포로로 잡혀있었다.
풀려나가는 폴란드인에게 스필만의 이야기를하며 도와줄것을 요청했지만
스필만의 노력에도 그를 찾았을수 없었고 결국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러시아군이 독일진영을 점령했다는 소식과 승전곡이 여기저기 울려퍼진다.
스필만도 사람들을 향해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독일장교가 주고간옷을 입고나간탓에 러시아군은 스필만을 독일군으로 오해해 죽임을 당할뻔했다.
왜 그 코트를 입고있냐는 러시아군의 말에 스필만은 그저 "추워서..."
생명이 위태로운상황에서 어느 진영의 옷을 입는게 뭐가 그리 대수이겠나... 그저 추울뿐인데....


정치적 야욕이든 개인의 욕망이든 공동의 목표이든 어떤이유에서도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서 안된다.
너무나 험난하고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스필만은 음악가로서 활동하다 88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Movie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콕 영화 # 라붐 La Boum/영화리뷰] (0) | 2020.08.01 |
---|---|
[집콕 영화 # 사냥의 시간/영화리뷰] (0) | 2020.05.02 |